열어두기 민망해 접어놓습니다
A-F2035의 엔진소리가 들린다. 그 소름 끼치는 소리는 빌어먹게도 우리들의 위에 떠있었으며
우리는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악마의 소리를 들으며 공포에 떨었다.
빌어먹을, 역시 싼값에 받는 게 아니었는데.
[RS, RS 이쪽은 FL, 급히 지원 바란다. RS! 들리나! 망할- FL 지원 요청한다!]
잡음과 기계음만 들려오는 헤드워커를 잡아 뺐다. 워낙 보조장비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두꺼워 대가리 방어대로도 쓰이는 모양이지만 지금처럼 상대가 두꺼운 메탈, 예로 들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싸구려 점보슈트따윈 쉽게 구멍 낼 수 있는 놈이라면 괜한 무계 따윈 버리고 도망치는 속력이나 높이는 게 상책이다.
휙 던져버린 헤드워커와 헬멧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익숙하지 않은 공기가 피부게 스며들어 덕분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던 정신을 일깨운다. 최대한으로 달리는 통에 서늘한 바람이 수시로 얼굴을 치는데도 온몸이 땀으로 축축했다. 전시가 처음인 것도 아닌데 마치 신참처럼 벌벌 떠는 내 자신과 그렇게 만든 이 지옥 같은 상황에 욕이 튀어 나온다.
“빌어먹을! 보레오족이 온다고는 말이 없었잖아!”
워낙 초기에 의뢰는 그저 중립상태에 껴있는 마헨 행성을 정찰하다가 살고 있는 원주민을 발견할 시 몇 방 쏴줘서 구멍 좀 뚫어주란 거였는데. 요즘 돈이 나오는 큰 전투들이 슬슬 끝나는 통에 일들이 적어진 게 원인이랄까, 게이트 앞에서 묘한 분위기로 웃으며 거래하는 - 용병의 목숨을 사고 돈을 주는 행위니 사는 게 맞다 - 놈의 말 따윈 평소엔 듣는 척도 안 했을 것이다. 일도 그저 그런 난이도라 무직 용병들을 싸게 사대는 것도 의심하진 않았는데. 망할, 그게 설마 미끼였다니.
상황은 뻔했다. 무음만 들려오는 헤드워커만 보아도 멍청이가 아니면 앞은 다 보이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어쩐 이유인지 사들여졌고, 이용당했으며, 동시에 버려졌다. 그쪽이 이 상황을 몰랐다는 환상보다는 이 말이 훨씬 맞겠지. 그야, 술집에서 옆에 여자를 끼고 허세 치며 하는 말들처럼 전쟁 틈 사이에선 인권 따위 보장될 리가 있을 리 없고, 속아버린 내가 얼간인건 불평할 수 없지만 - 싱글싱글 웃던 그 의뢰인을 본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쏘아 죽여버릴 테다.
하기야 그것도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말이지만.
이를 갈 세도 없이 땀을 쉴 세 없이 흘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며 달려나간다.
이름 모를 잡초들을 정신 없이 짓밟는다. 아까 전까지 옆에 있었던, 이송 중에 나를 유난히 경계심 높은 눈초리로 쏘아보던 갈색 슈트의 놈은 이미 피를 뿜어대며 시체로 변환했다. 혀끝까지 수위 높은 언어들이 튀어나오는 상황에서도 얌전히 뛰어가는 이유는 지금 이상태만 해도 목구멍이 아파 뒈질 것 같기 때문이라는 아주 중요하고도 쉬운 이야기였다.
메헨, 아니 마헨이던가 하는, 현재 위치하는 계에서도 끄트머리에 위치하는 행성은 밤이 되면 겨우 일부의 지역밖에는 달빛 - 정확히는 달이 아니라 밤에 보이는 지구에서 달과 같은 존재인 행성의 빛 - 이 들어오는 70%이상이 숲과 잡초들로 구성되어있는 곳이다. 당연하게도 현대문명은 그리 발전되지 않은 곳으로 아마 전쟁에서 중립상태인 이유도 별 힘도 없는 이곳을 어느 쪽 다 건들일 필요가 없어서일것이다. 아무튼 이 특이한 행성 덕분에 나는 도망치는 상황 속에서 흐릿한 빛만을 쫓아 휘청거리고 가끔은 반쯤 넘어지며 달려가고 있다. 보통 도망칠 때는 어두워서 상대의 이목을 방해해 좋은 환경이겠지만 그 쫓아오는 상대가 보레오족이라면, 어둠 따위 상관없는 시력을 가진 놈들이라면 전혀 문제 없는 것이다. 반대로 도망치고 있는 우리의 눈만 가려서는 공포만 더 조장하고 있는 망할 사태가 발생한다.
귀를 멍하게 울리던 놈들 함선의 모터 소리가 줄어든 대신 풀밭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무거운 발걸음과 비싼 총기류 특유의 음音이 바짝 쫓아온다. 철컥 철컥. 여기서 한발자국만 휘청여도 나는 저 라이플에 뚫려 죽겠지. 예쁜 구멍을 한가운데 얻고서.
머릿속에서는 이미 분수같이 붉은 액체를 내뿜으며 싸구려 슈트와 함께 뭉개지는 나 자신이 이미지화된다. 그 가능성많은 상상에 피가 말리면서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계속해서 움직여 달려나갔다.
나는 살고 싶다. 내가 살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을 가진 용병일을 하면서 언제나 생각해왔었던 나의 비전.
내가 그 더러운 전쟁터들을 지나며 동료를 밟고라도 지켜왔던 것. 설령 사는 게 그리 좋지는 않다 해도 나는 이 지긋지긋한 땅바닥에서 살고 싶단 말이다. 인류가 그다지 지나가지 않은듯한 길고 두꺼운 풀들을 헤집으며 이미 감각이 없어진 다리를 채찍질한다. 이제는 같은 처지의 동료들도 보이지 않고 그저 스스로의 목숨을 보장하려 달리는 수밖에 없다.
“…..!”
바로 귀 옆으로 빔이 지나간다. 내 눈깔이 돌아가는 시간이 숨이 막힐 정도로 길다. 한계까지 힘을 모아서 멀리 보이는 숲으로 뛰쳐나간다. 어두운 녹색이 지금만큼은 괴물의 아가리보다는 전기세가 나간 포근한 내 집처럼 보인다.
거의 마지막에는 굴러서 들어가는 바람에 나무 기둥에 몸을 박는다. 아무리 싸구려라지만 얼얼할 충격까지 오면 대체 얼마나 굴러간 거냐. 그러나 지금은 그딴 생각할 시간 없이 우선 일어나 달려야 했다. 보레오족은 레지스탕스 파의 일원으로 사격으로는 따라올 수 없다는 비약적인 시력의 종족이다. 어두움, 원거리 따위 놈들에게는 그닥 일도 아닌지라 평균적인 능력의 지구인은 비교당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단 한가지 약점이 있다면 다각선의 방향으로는 목표를 잘 잡을 수가 없다는 것. 아까 전까지 달려가던 빈 풀밭에서는 죽어라 달려도 결국 총질에 죽어버렸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빡빡한 나무들 사이로 지그재그로 달려가는 장신의 남자는 놈들이 찾아내기 힘들게 분명하다.
거친 숨을 내뿜으며 분명 오래됬을 나무들 사이를 마구 뛰어댔다. 눈앞이 시껌해서 보이지 않던 가지에는 얼굴을 쳐 맞으며. 놈들의 소리가 이제는 안 들리는지, 아니면 그저 내 숨소리가 내 귀만 돌고 도는지 알수가 없다. 한참을 뛰다가 빛이 잎사귀 사이로 아주 미세하게 들어오는 거대한 고목 옆에 간신히 몸을 기댄다. 내 체력의 한계는 예전에 지나쳤다.
“우웩..헉헉…욱..우우웩. 억..”
산소부족의 혼란스러운 머리로 급격한 헛구역질을 막는 건 무리. 헐떡이며 기둥을 부여잡고 한껏 침을 뱉는다. 위액의 쓴맛이 입안을 맴돌 쯤에야 겨우 입에서 흘러나오는 침을 소매로 대강 닦아내고 크게 숨을 골랐다. 빈혈이 오듯 - 내가 빈혈이라니. 맙소사 - 눈앞이 고물 텔리게이트처럼 어둡다가 시아가 크이기 시작했다.
이제 어쩌나. 흩어진 용병들이 나같이 살아남았을 거란 희망은 버려야 한다. 가지고 있는 건 기본 스낵 몇 조각과 조잡한 점보슈트와 헤드, 그래도 비싸게 치른 G-23시리즈의 총과 나이프.
오늘은 어떻게든 쉴 곳을 찾아야 한다. 충혈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나무, 나무, 그리고 나무.
아마 여기서 동굴 같은걸 찾는 건 어렵겠지. 적어도 평지와는 가능한 먼 곳에서 자야 했다. 놈들이 숲까지 따라붙지 않는다는 가능성은 없다. 이를 꽉 다물고 다리를 움직인다. 몸이 조금 쉴만하자 느껴지는 숲 특유의 흙 냄새와 풀 냄새. 쇠와 피 냄새 속에서 살다가 이런걸 맡아본 지 대체 얼마만인지. 시야를 방해하는 가지와 이파리들을 밀어내며 안쪽으로 들어간다. 큰 가지들이 여러겹으로 겹쳐서 손으로 잘라내지 않으면 당장 앞조차도 보이지 않는 숲속을 걸어다닌다. 내일은 숨겨둔 비행선을 찾아봐야지. 이미 포위당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내 나름의 경력 속에서 잘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 옴겨 놨다고 나름 자신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밀쳐내는 잎들의 속삭임이 어쩐지 무겁다. 어딘가 좀더 고요해진 숲 속은 마치 맹수를 감싸주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맹수, 눈앞에 먹이감을 노리며 천천히 범위를 좁혀가는 맹수를.
눈 앞에 있던 거대한 이파리를 치우는 순간 생각 치도 못한 빛에 시아로 들어온다. 그 빛에 눈을 감자마자 들려오는 바람소리. 눈앞에 날카로운 흉기가 보였다. 정확히는 내 목에 간신히 멈춰져 있는 긴 손톱이 맞겠지만.
구석진 어느 행성의 푸르른 빛이 주위를 비춘다. 흉기를 발견하고 멈추어졌던 숨이 천천히 내려간다. 비례하듯 식어버린 땀이 얼굴에서 목으로, 목에서 상대의 손톱으로 흘러간다. 나보다 좀더 신장이 작은 듯, 땀이 흘러가는 모양을 보며 천천히 상대의 얼굴로 눈을 돌렸다. 맹수의 눈.
누가 이 숲을 내 집 같다고 했던가, 역시나 맹수를 숨기고 있던 괴물의 아가리였다는 걸 지금 와서 깨닫는다. 그런데 왜 나는 겁먹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남보다 방어막은 몇 배로 쳐두는 주제에 어째선지 나를 사냥하는 맹수에게서 시선을 땔 수가 없다. 눈, 저 눈. 푸른색의 피부색보다 좀더 짙은, 푸르른 청색 안에 홍채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보라. 마치 물속에 보라색 잉크가 퍼져나가는 것처럼. 그 순간을 담아 사진으로 남겨둔 것 같은….
“ -누구지.”
이질적이면서도, 어딘가 그리운 무언가를 생각나게 하는 눈동자에 빠졌었던 나는 급작스런 맹수의 낮고 어눌한 제국어에 총을 떨어트릴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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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나름 열심히 한게 다시 어둠속으로 뭍이는게 불쌍해서.
어짜피 별로 인기없는 텍큐. 으하하. 그냥 요러고 냅두지 뭐.